진실이란 무엇인가: 인식론적 탐구
고대 철학부터 현대 인식론까지, 진실의 본질에 대한 탐구
진실을 향한 오래된 질문
“진실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인류 지성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본적이며, 아직까지도 완결되지 않은 질문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소피스트들부터 21세기의 인식론자들에 이르기까지, 진실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철학의 중심부를 관통해왔다. 놀라운 것은 수천 년의 사유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보편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합의의 부재가 탐구의 무의미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실에 대한 각기 다른 이론들은 진실이라는 현상의 다층적 본질을 드러내며,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라 불리는 현재, 진실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그 어느 때보다 실천적 긴급성을 띠고 있다.
고대의 진실론: 대응설의 탄생
서양 철학에서 진실에 대한 체계적 논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진실에 대한 가장 직관적인 정의를 제시했다.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참이다.” 이 정의는 진실의 **대응설(Correspondence Theory)**의 원형이 되었다. 대응설에 따르면, 하나의 명제가 참인 것은 그 명제가 세계의 실제 상태와 대응(correspond)할 때이다.
대응설의 직관적 매력은 강력하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다”라는 문장이 참인 이유는 실제로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자명한 것이 있을까? 그러나 이 자명해 보이는 이론은 깊이 파고들면 심각한 철학적 난제에 봉착한다. “대응”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명제와 세계 사이의 대응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계를 명제와 독립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세계 경험은 언제나 이미 개념과 언어에 의해 매개되어 있다.
플라톤은 다른 방향에서 진실에 접근했다. 그에게 진정한 실재는 감각적 세계가 아니라 이데아(Idea)의 세계에 있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이데아의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며, 진실은 이성을 통해 이데아에 접근할 때 드러난다.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서 플라톤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을 실재라고 믿는 수인들의 모습을 통해, 감각적 경험에 의존하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중세에서 근대로: 진실의 기반 이동
중세 기독교 철학에서 진실의 궁극적 기반은 신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을 진실 그 자체와 동일시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대응설을 기독교 신학과 결합하여, 사물의 진실은 그것이 신의 지성에 대응하는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에 진실은 인간의 발견의 대상이라기보다 신의 계시의 영역에 속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진실의 기반은 신에서 인간의 이성으로 이동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출발점을 인간의 자기의식에서 찾으려는 시도였다. 데카르트에게 진실의 기준은 “명석 판명(clara et distincta)“한 관념, 즉 이성에 의해 명확하고 뚜렷하게 파악되는 것이었다. 이로써 진실의 탐구는 신학적 명상에서 인식론적 방법론으로 전환되었다.
칸트는 이 전환을 더욱 급진적으로 밀고 나갔다. 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는 우리의 인식이 대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우리의 인식 구조에 따른다는 혁명적 주장이었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는 “물자체(Ding an sich)“를 직접 인식할 수 없으며, 항상 시간, 공간, 인과성 등 인식의 선험적 틀을 통해 세계를 경험한다. 이는 대응설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만약 우리가 세계 자체에 접근할 수 없다면, 명제와 세계의 “대응”은 어떻게 확인될 수 있는가?
현대 진실론의 분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진실에 대한 이론은 여러 방향으로 분화했다. 대응설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정합설(Coherence Theory)**은 진실을 개별 명제와 세계의 대응이 아닌, 명제들 간의 내적 정합성에서 찾는다. 한 명제가 참인 것은 그것이 다른 참인 명제들과 논리적으로 일관된 체계를 형성할 때이다. 브래들리, 블랜샤드 등의 관념론자들이 주창한 이 이론은, 우리가 실제로 진위를 판단할 때 개별 사실 확인보다 전체적인 정합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정합적이지만 완전히 허구적인 체계도 가능하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잘 짜여진 소설은 내적으로 완벽하게 정합적이지만, 그것을 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실용주의 진실론(Pragmatic Theory)**은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 등 미국 실용주의 철학자들이 발전시켰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진실은 추상적 대응이나 정합성이 아니라, 실제적 결과에 의해 판단된다. 어떤 믿음이 참인 것은 그것이 실천에서 “작동(work)“할 때, 즉 우리의 행동을 성공적으로 안내할 때이다. 실용주의 진실론은 과학적 방법론의 작동 방식을 잘 설명하지만, “유용한 거짓”의 가능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어떤 믿음이 유용하다고 해서 반드시 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합의설(Consensus Theory)**은 하버마스 등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진실은 이상적인 담론 조건 하에서 참여자들의 합리적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이 이론은 진실의 사회적 차원을 부각시키며, 민주적 토론과 공론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합의가 오류인 경우도 빈번했으며(지구 중심설 등), 이상적 담론 조건 자체가 현실에서 충족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은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에 급진적 회의를 제기했다. 미셸 푸코는 진실이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진실”은 객관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권력-지식 체제에 의해 구성되고 유통되는 것이었다. 자크 데리다는 해체주의를 통해 텍스트의 의미가 결코 고정될 수 없으며, 무한한 해석의 유희 속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진다고 보았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거대 서사의 종언”을 선언하며, 과학, 이성, 진보 등 근대의 보편적 진실 주장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 비판은 진실의 권력적, 문화적, 역사적 조건성을 드러내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동시에 “진실은 없다, 모든 것은 해석이다”라는 극단적 상대주의는 도덕적, 정치적으로 위험한 귀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만약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홀로코스트 부정이나 기후변화 부정에 대해 어떤 근거로 반박할 수 있는가?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진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포스트-트루스(post-truth)“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포스트-트루스는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개인적 신념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현상의 배경에는 소셜 미디어의 확산, 정보 과잉, 전통적 게이트키퍼의 약화, 그리고 앞서 논의한 인지편향의 작동이 복합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트루스 시대가 진실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시대는 진실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진실에 도달하는 방법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가짜 뉴스와 허위정보의 범람은 그 자체로 진실의 존재를 전제한다. “가짜”라는 판단은 “진짜”가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비판적 합리주의자 칼 포퍼의 통찰이 새롭게 조명된다. 포퍼는 우리가 절대적 진실에 도달할 수 없더라도, 오류를 점진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진실의 소유가 아니라, 진실을 향한 끊임없는 비판적 탐구의 과정이다.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이야말로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별하는 핵심 기준이며, 이는 일상적 판단에서도 유효한 원리다.
진실을 향한 실천적 태도
진실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가 실천적 차원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에 대한 철학적 겸손, 즉 자신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첫걸음이다.
첫째, **인식론적 겸손(epistemic humility)**을 실천해야 한다. 자신의 믿음이 오류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반대 증거에 열려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확증 편향에 대한 의식적 저항이기도 하다. 둘째, **증거 기반 사고(evidence-based thinking)**를 습관화해야 한다. 감정적 호소나 권위에 대한 맹목적 의존이 아닌, 검증 가능한 증거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셋째, **대화적 이성(communicative reason)**을 실천해야 한다. 진실은 고립된 개인이 아닌, 다양한 관점이 교차하는 공론장에서 더 풍부하게 드러난다.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아마도 영원히 완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무지와 기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진실의 탐구는 결론이 아닌 과정이며, 그 과정 자체가 인간 지성의 가장 고귀한 실천이다. Aut-Veritas, 즉 “진실 아니면”이라는 우리의 이름이 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끊임없는 탐구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