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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 10분 읽기 · 2025. 12. 20.

양자 컴퓨팅의 현실과 미래

과대광고를 넘어 실질적 가능성을 탐색하다

양자의 세계로 들어서며

20세기 초반, 물리학자들은 원자 이하의 세계에서 기존 물리법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입자가 동시에 여러 상태에 존재할 수 있고, 멀리 떨어진 입자들이 즉각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양자역학의 원리는 당시 과학자들에게도 직관에 반하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조차 양자 얽힘을 “유령 같은 원격 작용”이라 부르며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이 기묘한 양자역학의 원리를 컴퓨팅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양자 컴퓨터는 기존의 고전 컴퓨터가 비트(0 또는 1)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큐비트(qubit)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큐비트는 중첩(superposition) 원리에 의해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으며, 얽힘(entanglement)을 통해 여러 큐비트가 서로 연결되어 병렬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충분한 수의 큐비트를 가진 양자 컴퓨터는 특정 유형의 문제에서 기존 컴퓨터를 압도적으로 능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론적 가능성과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한다. 양자 컴퓨팅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대광고와 실질적 성과를 분리하는 냉철한 시각이 필요하다.

양자 우위 논쟁

구글의 시카모어 프로세서는 2019년에 기존 슈퍼컴퓨터로 1만 년이 걸리는 계산을 200초 만에 완료하며 양자 우위를 입증했고, 이후 모든 전통 컴퓨터는 양자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학계 내에서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양자 우위는 양자 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로는 합리적인 시간 내에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만, 그 문제가 반드시 실용적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라는 점이 핵심적인 비판이다.

실제로 양자 우위를 주장한 실험들에서 사용된 문제들은 양자 컴퓨터에 유리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것이었다. 이는 양자 컴퓨터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이지만, 일상적인 컴퓨팅 작업에서의 실용적 우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자 시뮬레이션, 최적화 문제, 약물 설계 등에서 양자 컴퓨터가 실질적인 이점을 제공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이 많다.

오류 정정의 난제

양자 컴퓨팅의 가장 큰 기술적 도전은 오류 정정이다. 큐비트는 극도로 불안정하며, 외부 환경의 미세한 변화에도 쉽게 “결어긋남(decoherence)” 현상이 발생하여 양자 정보가 소실된다. 현재의 양자 컴퓨터는 “잡음이 있는 중간 규모 양자(NISQ)” 시대에 해당하며, 오류율이 높아 실용적 계산에 제한이 있다.

오류를 정정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논리적 큐비트를 만들기 위해 수백에서 수천 개의 물리적 큐비트가 필요하다. 현재 가장 앞선 양자 프로세서가 수백에서 천 개 내외의 물리적 큐비트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류가 정정된 대규모 양자 컴퓨팅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다. IB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은 2030년대 중반까지 100만 큐비트급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목표의 달성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암호 체계와 양자 위협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되면 현재 사용되는 모든 암호 체계가 즉시 무력화되므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완전한 붕괴가 불가피하다. 양자 컴퓨터가 암호 체계에 미치는 위협은 분명 실재하지만, 그 시기와 범위에 대해서는 신중한 분석이 필요하다. 쇼어 알고리즘(Shor’s algorithm)은 이론적으로 RSA와 같은 공개키 암호를 효율적으로 해독할 수 있지만, 이를 실행하려면 수백만 개의 오류 정정된 큐비트가 필요한데 이는 현재 기술로부터 수십 년은 걸릴 수 있다.

대칭키 암호 체계인 AES의 경우, 양자 컴퓨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키 길이를 두 배로 늘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따라서 양자 컴퓨터의 암호 해독 위협은 실재하지만, 이미 대응 방안이 준비되고 있으며 “갑작스러운 붕괴” 시나리오는 현실적이지 않다.

실질적 응용 분야

과대광고를 걷어내고 살펴보면, 양자 컴퓨팅이 가장 유망한 분야들이 있다. 분자와 화학 반응의 시뮬레이션은 양자 컴퓨터의 가장 자연스러운 응용 분야다. 분자 자체가 양자역학적으로 작동하므로, 양자 컴퓨터가 이를 시뮬레이션하는 데 본질적인 이점을 갖는다. 신약 개발, 소재 과학, 촉매 설계 등에서 혁신적 돌파구를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적화 문제도 양자 컴퓨팅의 유망한 응용 분야다. 물류 최적화, 금융 포트폴리오 관리, 교통 흐름 최적화 등 수많은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문제에서 양자 알고리즘이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분야에서도 양자 컴퓨터가 기존 알고리즘 대비 실질적으로 얼마나 우위를 보일 수 있는지는 아직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인 열린 질문이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분야에서의 양자 컴퓨팅 활용도 주목받고 있다. 양자 기계학습 알고리즘은 고차원 데이터 공간에서의 패턴 인식에서 기존 방법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는 이론적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실험적 검증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실적 전망

양자 컴퓨팅에 대한 건강한 시각은 극단적 낙관과 회의 사이 어딘가에 있다. 양자 컴퓨터가 모든 컴퓨팅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도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동시에, 양자 컴퓨팅이 단순한 유행에 불과하다는 회의론도 과학적 성과를 간과하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전망은 양자 컴퓨터와 고전 컴퓨터가 서로 보완적으로 활용되는 하이브리드 컴퓨팅 패러다임이다. 고전 컴퓨터가 잘 수행하는 작업은 그대로 고전 컴퓨터에게 맡기고, 양자 컴퓨터는 특정 유형의 문제에서만 선택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향후 수십 년간의 현실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을 지켜보면서도, 과장된 주장에 현혹되지 않는 비판적 안목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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